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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언론의 레이건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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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재철 작성일04-06-08 14:02 댓글0건 조회6,2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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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7월 시애틀에 도착했을 때 미국 경기는 거의 파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타드라는 세계 제1의 조선회사가 갑자기 공장 문을 폐쇄했으며,미 서북부 산업의 중심이었던 보잉항공사가 하루 아침에 수천명의 근로자를 해고했던 시절이었다. 일반인의 체감경기는 1997년 말 한국이 경험한 IMF 체제 속에서의 느낌과 비슷했다. 소비자 물가지수가 한해 동안에 12.4% 올랐으며,10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직장에서 쫓겨났었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의 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날드 레이건은 미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인권외교를 앞세웠지만 이란 인질사태에 질질 끌려갔던 지미 카터 전임 대통령과는 대조적이었다. 레이건은 집무를 시작하자마자 ‘강한 미국’을 내세웠으며,부자들에게 그들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마음껏 쓰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가진 자들이 그들의 부(富)를 사용해 중산층 이하에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소위 트릭클 다운(trickle-down) 형의 레이거노믹스를 열심히 전파해 나갔다. 숨통이 꽉꽉 막힐 것 같던 당시 미국경제에서 내수가 살아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재선에 성공한 레이건은 1985년 프로미식축구 결승전인 제19차 수퍼볼 개막식에서 “게임의 법칙에 따라 승자가 이기면 약자도 억울할 게 없다”라는 축사를 했다. 물론 이 개막식은 TV로 전세계에 방영됐다. 지금까지 시장 자본주의 정신을 그렇게 쉽게 표현한 대통령은 없었으며,그런 점에서 그를 단순히 할리우드 출신의 스타 대통령으로만 여길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레이건은 작은 정부를 지향했으며 국가의 제반 문제를 시장논리로 풀어나갔다. 하지만 그는 소련과의 무기삭감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스타 워즈’라는 우주 프로젝트를 통해 과감하게 국방예산을 늘려나갔다. 나아가서 컴퓨터와 정보통신,그리고 항공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 나갔다.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관련 산업에 대한 미래지향적인 투자 정책은 미국의 위기극복과 잘 맞아 떨어졌다. 미국은 이를 통해 정보화 사회를 일찍 이루어낼 수 있었으며,80년대 초의 경제 불황에서 벗어나는 산업구조를 만들어 냈다. 레이건의 재임기간 동안 1200만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으며,미국은 이를 통해 90년대 이후의 장기 호황을 누리는 산업여건을 마련했다. 나아가서 레이건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종식시켰으며,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기여했다고 역사는 그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다.

로날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은 향년 93세로 지난 5일 타계했다. 시장 자본주의와 기독교 정신으로 공산주의와 싸워 이긴 그의 경험은 제헌절을 맞아 남북한간의 화해무드 속에 있는 국내외의 정치지도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뉴욕타임스 인터넷 신문은 6일자 장장 16쪽에 달하는 일면 머리기사로 그의 부음을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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